제주 유수암의 하르방당

얼마 전 산책을 하다 알게 된 하르방당과 할망당입니다. 

하르방이나 할망은 제주 사투리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일컫는 말이랍니다.

당.. 이란 말은 신앙의 장소 즉 하르방당은 할아버지 신을 모시는 당을 뜻합니다. 제주도에서 돌미륵(미륵불)을 신체로 모시는 신당을 지칭하는 표현이랍니다. 보존 상태가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돌미륵 신당의 대표적인 예인 '김녕리 서문하르방당'이 있습니다만, 오늘은 유수암의 하르방 당에 대해 알아봅니다.

 

※ 유수암리 거문데기 하르방당의 역사와 의미

제주도는 전통적으로 다양한 신앙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지역으로, 마을마다 고유한 당(堂)을 두어 신앙의 중심지로 삼아 왔다. 이 중에서도 유수암리에 위치한 '거문데기 하르방당'은 마을의 오랜 역사와 함께하며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중요한 신앙 공간이다.

1. 유수암리의 역사적 배경

유수암리는 제주도 애월읍에 위치한 마을로, 조선 시대 초기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이 마을은 지방 토호였던 홍좌수(洪佐守)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그가 인근 주민들과 함께 정착하면서 점차 번성하였다. 당시의 제주도는 외세의 침입과 해적의 약탈이 빈번했던 지역이었으며, 이러한 환경 속에서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신앙적인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문데기 하르방당은 바로 이러한 필요에서 생겨난 신앙 공간으로, 주민들은 이를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장소로 여겼다. '하르방'이라는 말은 제주 방언으로 '할아버지'를 의미하는데, 이는 제주 신앙에서 할아버지 신(神) 혹은 보호신을 뜻하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하르방당은 마을을 지켜주는 보호신을 모시는 신당이라 할 수 있다.

2. 거문데기 하르방당의 위치와 구조

거문데기 하르방당은 유수암리의 중심부에서 다소 떨어진 외곽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마을을 감싸는 자연지형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당 주변은 울창한 나무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제주도 특유의 신당 양식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제주의 신당들은 대체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형태로 조성되며,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신목(神木)이나 신석(神石)과 같은 자연물 자체가 신체(神體)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거문데기 하르방당 내부에는 마을 주민들이 세운 작은 제단이 있으며, 여기에 마을 수호신으로 숭배되는 신체(神體)가 놓여 있다. 이 신체는 바위 형태를 띠고 있으며, 주민들은 이를 신성시하여 매년 정기적인 제사를 지내왔다. 당 주변에는 제사 의식을 치를 때 사용되는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신앙적 성격이 강한 장소로 유지되고 있다.

3. 마을 공동체와 하르방당

과거에는 제주도 각 마을마다 당이 존재했고, 그곳에서 정기적인 제사가 이루어졌다. 유수암리 역시 마찬가지로, 매년 음력 특정한 날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당굿을 열었다. 당굿은 마을을 지켜주는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으로, 마을의 평안과 풍년,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자리였다. 이 의식에서는 제주 전통 무속 신앙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무당이 신을 불러내어 주민들의 소망을 전하는 과정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전통적 신앙 행위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이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제주도 내에서도 종교적 신념이 변화하고, 젊은 세대들이 전통 신앙을 이어가기보다는 현대적인 종교를 따르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거문데기 하르방당 역시 과거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가 아니라, 일부 마을 주민들만이 간간이 방문하는 정도로 변모하였다.

4. 보존 문제와 위기 상황

거문데기 하르방당은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주민들에 의해 보존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보존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신당 주변의 환경 관리 부족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되고 마을 주민들이 꾸준히 방문하였으나, 현재는 제초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풀과 덩굴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당의 원형이 점차 훼손되고 있으며,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신당에 대한 인식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유수암리 인근에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되면서 신당의 보존 여부가 위기에 처해 있다. 개발로 인해 신당 주변의 자연환경이 변형될 가능성이 커졌으며, 신당 자체가 택지 개발 계획에 포함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거문데기 하르방당이 단순한 신앙 공간을 넘어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므로, 이를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보존 방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5. 하르방당 보존을 위한 방안

거문데기 하르방당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제주도 내 향토유형유산으로 지정하여 공식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제주도 내 일부 신당들은 향토유형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이러한 사례를 참고하여 거문데기 하르방당도 유산 목록에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마을 주민들과 협력하여 정기적인 환경 정비 작업을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을 공동체가 다시 활성화되어 신당을 중심으로 문화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자연스럽게 신당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이를 위해 신당에서 전통 제사뿐만 아니라 마을 축제와 같은 행사를 열어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셋째, 하르방당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재 거문데기 하르방당에 대한 공식적인 역사 기록이 부족한 상태이므로, 이를 학술적으로 정리하여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역 연구자들과 협력하여 구술사 및 문헌 자료를 조사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 결론

거문데기 하르방당은 단순한 신앙 공간을 넘어, 유수암리 주민들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현대화와 개발로 인해 그 존재가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를 보존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도의 전통 신앙과 문화를 유지하는 차원에서도 하르방당 보존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이를 위해 지역 사회와 정부, 연구자들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 지속적인 관심과 보호를 통해 거문데기 하르방당이 후대에도 전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